그동안의 나
가을이 왔다.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맞게 사색을 하고 싶어지는 나날이 왔다.
그동안의 나는 삶을 살다보면 일에 치여서, 인간관계에 치여서 삶이 힘들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그나마 남은 자유시간을 즐겨본다. 내일은 정말 회사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이 되면 겨우겨우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를 닦는다. 지금 이렇게 여유부릴때가 아니지만, 이 만큼은 여유지게 닦고 싶다고 밍기적거리며, 바쁘게 옷을 입고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간다.
출근을 하면 무거운 사무실 공기에 숨이 턱 막혀와도, 한잔의 커피로 숨을 달랜다. 커피 한잔 조차 할 수 없는 바쁜 날에 비해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다 기뻐하면서도, 해도 해도 어려운 일에 조금이라도 적응해보고 잘 해내고자 열심히 일을 해본다. 벅차다.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 그랬다. 일상이 벅찰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너무 지친 요즘 시간을 가지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발자국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았다.
나는 사람이 좋았다. 다양한 사람을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좋았다. 별 거 아닌 이야기에도 재미있었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모든 다양한 행사와 모임을 참여하고, 사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만나자는 말에 거절하지 않았고 먼저 만나자는 말도 많이 했다.
사람간의 관계를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와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그냥 서로 사이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모임에 속한 사람 중 한명이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지 몰랐다. 그냥 모른척 다같이 하하호호 어울리기도 했으며 다같이 모이는 모임에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만나자고 하면, 너의 그런 행동이 불편하다 말하는 사람이 있어, 따로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속한 모임이 흝어지기 시작했다.
사람간의 일은 언제나 달라지고 나이를 먹을 수록 가까웠던 친구사이가 멀어진다고는 하지만 그게 이렇게나 쓸쓸해지는 일인줄은 몰랐다. 이제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보다는 혼자의 삶이 더욱 편해졌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불편해지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타인을 만나도 깊은 이야기 보다는 겉핥기식 이야기만 햇으며, 삶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가벼운 연애 프로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사람을 만난 것 같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느낌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이를 먹을 수록 현실을 깨달을 수록 서로 대화하기 힘들었다. 가치관과 환경이 달라서도 있겠지만 서로가 가진 것에 대해 부러워하는 마음을 숨기고 나도 잘났다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학창 시절부터 즉 모든게 비슷하다고 여겨졌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너무나 달라진 지금의 모습이 문제였다.
어려서는 같은 교복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얘기했다. 공통점이 같았고, 다른거라 해봤자 성적 정도 였다. 그러나 졸업 후 어떤 대학을 가는지에서 부터 달라졌다.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더 잘나가고 있을 때도 있었고,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 안심되었던 사람은 생각보다 나보다 잘나가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나만 제자리인 느낌.
여기서 나의 포지션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더 잘나가고 있던 사람인 것 같다. 자랑은 아니지만 적절히 괜찮은 대학과 직장을 다니는 나를 질투하는 사람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보기엔 그랬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사기업을 다녀서 공공기관에 속한 본인보다 잘 사는 것 같다는 그 친구. 학생때는 비슷했는데 내가 너와 같은 선택을 했으면 나도 그랬을까?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조금은 억울했다. 나는 언제나 열심히었다. 그가 나를 쉽게 판단한 것처럼 나 역시 쉽게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교 학점이 1점때라는 그의 대학 생활보다 적어도 나는 노력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방학때에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은 적이 없다. 나는 마음속에 불안감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내 미래를 위해 노력했다.이런 노력을 모르고 그렇게 쉽게 나에게 말하며 틱틱대는 친구에게 상처받았다. 친한 친구라 더욱 그랬다.
첫 합격 소식을 들은 날 다른 친구를 통해 들은, 걔 거기 가면 엄청 힘들어서 얼마 못버틸껄? 이런 말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들은 질투의 말 등 그냥 남 잘되는 것이 싫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내 인간관계가 이모양인 것일까. 고민해봐도 답은 없었다. 나 역시 남이 잘 되면 질투하는 한낱 인간이었으니.
이런 것 말고도 다른 일들로 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게 쌓이다 보니 이제는 그냥 혼자가 편해졌다. 혼자가 편해진 만큼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게 되었다.
서툴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나는 서투른 사람이란 것이다. 나는 사람과의 다툼이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을 손절하는 일이 별로 없었으며,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별로 사이가 안좋아지는 일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회피형이 된 것 같다.
남이 나에게 준 상처를 바로 말하지 못해서, 그래서 싸움을 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타인을 판단하고. 이러한 태도는 내 자존감과도 연관되었다. 나 혼자 타인을 판단하니,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했다. 또한 이렇다 보니 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몰랐다. 말하고 나서 상대방의 반응 역시 두려웠다.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냥 나만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으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관계는 겉돌기식 관계가 되었다.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나는 어쩌면 문제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무례한 사람에게 왜이렇게 무례하세요? 라고 답하는 게 요즘 트렌드라지만, 정작 소중한 사람이 나를 무례하게 대할 때면 나는 어떻게 대꾸할 지 아직도 모르겠다.
중심이 되고 싶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싸도 아싸도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놀고 소속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모임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이야기를 주도하기 보다는 들어주는 쪽에 속했다. 그렇기에 인싸가 되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내 모습 사이에 씁쓸함도 느꼈다.
많이 생각해보았다.
대화를 재밌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1)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 2)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할 것 3) 말을 재밌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 4) 적절한 성대모사와 제스처가 더해지면 좋음. 이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사실 많이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에서 인싸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잘 듣고 상상하고 그에 맞는 호기심이 포함된 질문을 통해 적절한 사회생활을 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일에 지쳐 사람에 지쳐 이 모든것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뭘 하든 뚝딱거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낀다. 나는 이런 모습의 내가 싫었다. 바뀌고 싶고 이런 모습의 나를 내가 발견할 때 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타인이 나에게 하는 조그마한 상처주는 말에도 타격이 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으나 잊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받은 상처를 묵혀두는 것일 뿐 이미 마음에는 상처가 크게 났다. 그러나 상처받은 말은 그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역시, 나에게 크게 다가온 상처였다. 결국은 자존감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꽤 나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다. 100점 만점인 세상에서, 나는 내 자신이 적어도 80점 이상 받지 못하면 나는 몬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잘 하고 싶었고, 마음같지 않은 나의 모습에 나는 나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100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성이 차지 않았으나 또 그만큼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나는 실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보다는 하나씩 잘 해가는 나에게 칭찬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는 타인의 말 한마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과 일치하면, 나는 그게 크게 다가왔다. 마음에 쿵 소리가 들리면서 온 몸의 신경이 솓구치고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타인이 나를 낮추는 말이나 칭찬의 말에 언제나 나 자신을 낮춰서 대답했다. 그렇기에 만만히 보는 사람 역시 늘어났다. 아니, 무례한 사람 역시 늘어났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칭찬을 칭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른 까내리거나 낮춰서 말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는 그런 사람이다 라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주고 싶었고 잘 어울리고 싶었고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싶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당당해지고 싶었고 무엇보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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